Faith's Holic

6. Under My Protection 나의 보호 아래 본문

Outlander아웃랜더/8. Written in My Own Heart's Blood

6. Under My Protection 나의 보호 아래

페이쓰 2025. 4. 1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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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 종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 두 시 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내 배도 그에 맞춰 반응하듯 꼬르륵 소리를 냈다.
여차저차 일이 겹쳐서, 나는 아직 차 한 잔도 못 마셨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제니는 마살리와 아이들과 간단히 요기를 했다고 했지만,
계란 정도는 더 먹을 수 있다고 했기에,
나는 피그 부인에게 혹시 집에 계란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보냈고,
스무 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품위 있게—그러나 분명하게—식도락에 빠져들었다.

부드럽게 반숙된 계란, 바삭하게 튀긴 정어리,
그리고 케이크 대신 나온 버터와 꿀을 얹은 플랩잭.
제니는 플랩잭이란 걸 처음 봤지만, 그 누구보다 기꺼이 빠르게 익숙해졌다.

“보게나, 달콤한 걸 쏙쏙 흡수하잖아!”
그녀는 포크로 푹 눌러보며 감탄했다.
“빤녹(bannock, 스코틀랜드식 둥근 납작빵)과는 전혀 다르네!”
그녀는 부엌 쪽을 힐끔 바라보더니, 나에게 몸을 기울여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부엌에 있는 분한테… 혹시,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고 해볼까?”

하지만 그 순간, 망가진 현관문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고개를 돌리는 사이 문이 밀려 열렸고, 그림자가 색색 칠해진 캔버스 러그 위에 길게 드리웠다— 그리고 그림자에 바로 이어 나타난 주인은, 영국군 소위 계급을 단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무너진 현관 풍경에 당황한 얼굴로 객실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레이 중령님 계십니까?”
그는 제니와 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물었다.

“지금 안 계세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대체 이런 말을 오늘 몇 번째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누구에게 몇 번이나 더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 청년은 더더욱 난감한 얼굴이 되었고, “그럼 혹시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부인? 그레이 중령님께 클린턴 장군님이 즉시 오라고 하셨고, 장군님께서… 그, 중령님이 아직 안 나타나신 걸 좀 의아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아—” 나는 옆에 앉은 제니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중령님께서 긴급한 용무로 나가시느라 그 메시지를 아직 못 보신 것 같아요.”
아마 그 종이 쪽지가, 제이미가 물속 무덤에서 극적으로 돌아오기 직전 존이 받은 바로 그 서신일 것이다. 그는 잠깐 눈을 흘겼지만, 읽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었었다.

병사는 실망스러운 한숨을 쉬었지만, 물러설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면, 부인. 중령님이 어디 계신지만 알려주시면,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전 그분 없이 본부로 돌아갈 수 없거든요.”
그는 조금 안쓰러운 얼굴로, 하지만 약간 매력적인 미소도 곁들이며 말했다. 그 웃음에 나도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났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정말 어디 계신지 몰라요.”
나는 일어서며 그를 문 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려 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가셨는지만 알려주세요. 거기로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완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켰다.

“말씀도 안 하고 나가셨어요.”
나는 그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섰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이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넘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클린턴 장군은 몇 주 전 미스킨자 무도회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는데— 세상에, 그게 고작 몇 주 전이었다니! 몇 생애는 지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당시 나에게는 꽤 상냥했지만, 지금 내가 대신해서 “사정상 불참”을 전한다고 해서 그걸 관대하게 받아들일 인물은 아니었다. 장군이란 사람들은 대개 자기 지위의 무게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니까.

“그 분, 지금 현역이 아니에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했다. 젊은 병사는 놀란 눈을 떴다.

“현역 맞습니다, 부인. 오늘 아침 전달된 메시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럴 수가 없는데—그게 가능해요?” 갑작스런 두려움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무엇이요, 부인?”

“그… 그냥 그분께 현역 복귀라고 통보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아, 그건 아니에요.” 그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레이 중령님의 연대장님이 직접 복귀 명령을 내리신 거예요. 파들로 공작께서요.”

“지..저스 H. 루스벨트 크라이스트.”
나는 주저앉으며 내뱉었다. 제니는 냅킨을 들고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게 뻔히 보였다. 그녀가 내가 저 말을 하는 걸 들은 건, 무려 25년 만이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옛 추억을 되짚을 때가 아니었다.

“좋아요,”
나는 젊은 병사 쪽으로 돌아서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내가 장군님께 함께 가는 게 좋겠어요.”

나는 다시 일어섰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옷 갈아입던 중 불쑥 손님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아직 속옷에 가까운 속옷셔츠와 아침용 드레싱가운만 입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입는 거 도와줄게.”
제니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는 병사에게 다정한 미소를 건네며 식탁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위엔 토스트와 마멀레이드, 따끈한 훈제 청어 접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한 입 해, 얘야. 좋은 음식을 버릴 순 없잖니.”


제니는 조용히 복도로 고개를 내밀고 귀를 기울였다. 그 아래층에선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와,
피그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병사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제니는 문을 살며시 닫았다.

“나도 같이 갈게.” 그녀가 말했다. “도시에 군인들이 바글바글한데,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해.”

“괜찮을—”
이라고 시작했지만, 나는 곧 말을 멈췄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부분의 영국 장교들은 나를 ‘레이디 존 그레이’로 알고 있긴 하지만,
하급 병사들까지 그 사실을 알거나, 그에 따르는 예우를 해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를 사칭자처럼 느끼고 있었고— 물론, 그 감정은 외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고마워요,” 나는 갑자기 말했다.
“같이 가줘서 든든하네요.”
지금 내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제이미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니의 동행은 큰 위안이었다. 다만, 내가 클린턴 장군과 이야기할 때 제니에게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걸 미리 알려야 할까 고민되기도 했다.

“난 한 마디도 안 할 테니 걱정 마.”
제니는 대답하며, 내 몸에 딱 붙도록 끈을 세게 조이며 살짝 신음소리를 냈다.
“그레이 경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장군한테 말할 거야?”

“절대 안 돼.”
나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했다.
“그 정도로 조이면 됐어요.”

“흠…”
그녀는 이미 옷장을 파고들어 내 드레스들 사이를 훑고 있었다.
“이건 어때? 목선이 꽤 깊어. 네 가슴은 여전히 멋지잖아.”

“그 사람을 유혹하려는 게 아닌데!”
나는 외쳤다.

“글쎄, 유혹하진 않더라도—관심은 돌려야겠지.”
제니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지.” 그녀는 날카롭게 눈썹을 한쪽만 치켜올렸다.
“내가 만약 영국 장군인데, 우리 귀한 중령이 난데없이 무시무시한 하이랜드 놈에게 납치당했다고 하면— 그 말을 기분 좋게 넘기긴 어렵겠지?”

이 말에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크림색 파이핑과 주름진 리본 장식이 들어간 호박색 실크 드레스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래, 이거다.”
제니는 내 끈을 단단히 묶은 뒤 한 걸음 물러서서 만족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리본 색이 네 피부색이랑 거의 같아서 목선이 실제보다 더 깊어 보이네.”

“당신은 꼭 지난 30년을 드레스 가게나 창녀촌에서 보낸 사람 같네요.”
긴장이 올라온 탓에,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니는 킥 하고 웃었다.
“딸이 셋, 손녀가 아홉, 이안의 누이 쪽엔 조카딸과 그 자식들까지 합쳐 열여섯이야. 대체로 비슷한 일이지 뭐.”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제니도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브리아나의 얼굴이 그리고 이안—우리가 잃어버린 이들이 갑자기 떠올랐고 우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서로를 껴안았다.
슬픔이 밀려드는 걸 막기 위해, 그저 단단히 붙들어매듯, 서로를 꼭 껴안았다.

“괜찮아,” 제니는 힘껏 날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당신도 딸을 잃은 게 아냐. 그 애는 아직 살아 있어. 그리고 이안은 내 곁에 있어. 절대 날 떠나지 않을 거야.”

“알아,” 나는 목이 메어 대답했다. “알고 있어.”
나는 그녀를 놓고 몸을 곧게 세우며,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
“손수건 있어요?”

그녀는 이미 한 장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허리춤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막 세탁한 듯 깨끗하고 단정히 접힌 손수건을 하나 더 꺼내 건네주었다.

“난 할머니잖니.”
그녀는 코를 세차게 풀며 말했다.
“항상 여분 손수건이 있어. 아니면 세 장쯤은.”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 그런데 머리는 어쩔 거야? 이 꼴로 거리에 나갈 순 없잖아.”

우리가 내 머리를 그나마 ‘단정’에 가까운 모습으로 정리할 즈음— 즉, 그물망 머리장식으로 말아 올리고, 넓은 챙이 달린 밀짚모자 아래로 핀으로 고정시킨 후—나는 클린턴 장군에게 뭐라고 말할지 대충이나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이 가라. 그것이 거짓말을 성공시키는 제1원칙이었다. 비록 그런 기술을 쓸 일이 꽤 오랜만이긴 했지만.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전령 하나가 존 경을 찾아왔다—사실이다.
쪽지를 가져왔고—그렇다.
나는 쪽지 내용을 전혀 몰랐다—완벽한 진실.
존 경은 전령과 함께 떠났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이 또한 기술적으로 진실이다.
단지 다른 전령이었을 뿐.

아니요, 어디 방향으로 갔는지 보지 못했어요— 맞다. 걸어서 갔는지 말을 타고 갔는지요?
모르겠네요. 존 경의 안장은 피프스 스트리트의 데이비슨 마구간에 맡겨져 있었죠,
불과 두 블록 거리였으니까.

그럴듯했다.
클린턴 장군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면, 나는 꽤 확신할 수 있었다— 말은 아직 마구간에 그대로 있을 테고, 그러면 그는 존이 시내 어딘가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겠지.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나를 정보원으로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존 그레이 경이라면 방문할 법한 장소들을 병사들을 시켜 수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필라델피아라는 도시가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을 장군이 다 뒤져볼 무렵엔 존이 돌아와 직접, 자신의 그 지긋지긋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겠지.

“그럼 제이미는 어쩔 건데?” 제니가 물었다. 표정에는 엷지만 분명한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
“설마 다시 이 도시에 들어오겠단 건 아니겠지?”

“안 그러길 바라요.”
나는 겨우 숨을 들이켰다. 코르셋 탓만은 아니었다. 심장이 속옷 단추에 닿을 만큼 세차게 뛰는 게 느껴졌다.

제니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긴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당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제이미가 네 곁으로 곧장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럴 거야. 꼭.”

그녀는 잠시 더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마에 주름을 잡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여기 남는 게 좋겠어. 네가 장군한테 가 있는 동안 그 사람이 돌아오면, 지금 상황이 어떤지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부엌에 있는 그 여자가 갑자기 그 사람이 문간에 서 있는 거 보면 토스트 포크로 찌를지도 몰라. 나는 그 사람한테 그런 일 못 맡겨.”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저히 피그 부인이 뜻밖의 하이랜더 등장에 당황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제니는 덧붙였다. “누군가는 이 난장판을 정리해야 하잖아. 그런 일은 내가 경험 좀 있으니까.”


젊은 병사는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안도의 표정으로 반겼다. 팔을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아니었지만, 정중하게 팔을 내밀었고—
그는 내가 거의 빨리 걷거나 뛰듯 따라가야 할 만큼 성큼성큼 걸었다.

클린턴 장군의 본부가 마련된 저택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날씨는 따뜻했고, 나는 이미 숨이 턱에 차고 얼굴은 축축하게 젖은 채 도착했다.

밀짚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머리칼은 목과 뺨에 들러붙고, 땀줄기는 드레스 안을 간질이며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저택의 넓은 파케 마루가 깔린 응접실로 안내했다. 새로운 병사에게 나를 넘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제야 나는 스커트를 털고, 모자를 바로잡고, 레이스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살짝 눌러 닦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나는 이 준비에 집중하느라 저편, 금빛 장식의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레이디 존 그레이.”
그는 내가 그를 알아본 걸 눈치채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의 하인이옵니다, 부인.”
그는 약간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눈까지 따뜻해지진 않았다.

“리처드슨 대위.”
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정말 반갑네요.”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그는 고개도 숙이지 않았다. 우리는 굳이 서로를 적이라고 선언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별로 정중하지도 않은 적이었다.

그는 내가 스파이 혐의와 선동 자료 유포 혐의로 체포될 것이라고 존에게 통보하며, “혹시 그 부인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한마디가 나와 존의 결혼을 불러온 시작이었다.

둘 다 진짜 혐의였고, 존은 아마 그 사실을 몰랐지만, 리처드슨의 "그럴 의도다"라는 말만 듣고
정중하게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답했으며— 그것도 그 당시 기준으론 사실이었고—
그로부터 두 시간 뒤, 나는 충격과 슬픔에 빠진 채 존의 거실에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질문들에 기계적으로 “예”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리처드슨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었고, 얼굴도 알지 못했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충성파 귀부인들이 영국 장교들을 위해 벌인 대규모 무도회—‘미스킨자’—에서 존이 나를 차갑게 소개했을 때 처음 대면했다. 그때서야 존은 이 자의 협박에 대해 말해주었고, “이 자는 피하라”는 짤막한 경고도 곁들였다.

“클린턴 장군을 기다리십니까?”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만약 그가 장군을 기다리는 거라면, 그가 들어간 사이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 부인.” 그가 대답했고, “하지만 레이디 존께서 먼저 들어가시죠. 제 일은 얼마든지 미룰 수 있으니.” 라고 우아하게 덧붙였다.

어딘가 섬뜩한 울림이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애매모호한 “흠” 소리로 넘겼다.

뭔가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처럼, 내 위치—영국군 전체와, 특히 리처드슨 대위에게 있어서—가 급격히 재정립될 위기에 놓였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제이미가 살아 있다는 게 공공연해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레이디 존 그레이가 아니게 된다. 나는 다시 제임스 프레이저의 아내, 클레어 프레이저가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은 물론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정도로 환영할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리처드슨 대위의 '천한 충동’에 제동을 걸어주던 유일한 안전장치가 사라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에게 뭐라 유의미한 말을 꺼내기도 전, 한 낭창한 체격의 젊은 중위가 나타나 나를 장군 앞으로 안내했다.

살롱은 장군의 집무실로 개조된 상태였는데, 한쪽 벽엔 짐 꾸러미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고, 깃발들은 개켜져 단정하게 묶여 있었으며, 코너 창가에서는 한 이등병이 군용 깃발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영국군이 철수 중이라는 건 이미 도시 전체가 다 아는 소문이었고, 보아하니 꽤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 듯했다.

여러 병사들이 안팎으로 짐을 날랐고, 그 중 둘은 책상 양옆에 앉아 있었다.

“레이디 존.”
클린턴 장군은 놀란 듯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등 위로 허리를 굽혔다.
“당신의 충실한 하인이옵니다, 부인.”

“안녕하시지요, 장군님.” 나는 말했다. 이미 빠르게 뛰고 있던 심장은 책상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인물을 본 순간 더욱 요동쳤다.

그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어딘지 익숙해 보였지만, 내가 그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누구지…?

“당신의 남편을 놀래켜줄 셈이었는데 말입니다.”
장군이 말했다.
“하지만 자리에 안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 네. 없어요.” 그 낯선 인물—보병 연대장으로 보였고, 제복은 보통 장교들보다 훨씬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 익숙한 제스처에 나는 순간적으로 어질어질해졌다.

“당신… 존 그레이 경의 친척이군요.”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발 대신 자기 머리를 그대로 말아 묶고 있었고—존처럼— 두개골의 윤곽도, 어깨의 각도도, 모두 존과 닮아 있었다.

이목구비도 닮았지만, 그의 얼굴엔 긴 복무와 전장의 피로가 깊게 패인 선으로 새겨져 있었다. 굳이 제복을 보지 않더라도, 그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고, 그 순간 얼굴이 확 달라졌다. 분명 존이 가진 그 매력도, 이 사람 역시 갖고 있었다.

“눈썰미가 대단하시군요, 부인.”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대륙식 인사로 짧게 입을 맞춘 뒤 관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클린턴 장군께 들었습니다. 제가 제 동생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고요.”

"오.”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럼 당신이 할이시군요! 저…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아, 제가 알고 있기로는 공작님이신데, 작위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각하.”

그는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 웃으며 말했다.

“파들로입니다. 하지만 제 이름은 해럴드입니다.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가족이 된 걸 환영합니다, 부인. 존이 결혼했다는 건 몰랐습니다.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고 들었어요?”

말투는 매우 다정했지만, 그 호의적인 태도 뒤에는 날카로운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예, 아주 최근입니다.”
존이 자기 가족에게 나에 대해 편지를 썼을까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썼다 하더라도, 그 편지가 도착했을 리가 없다. 나는 그의 가족이 정확히 누구인지조차 잘 몰랐다— 다만, 헨리의 아버지로 할 공작에 대해선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 맞다! 헨리 보러 오신 거죠?”
나는 말했다.
“그 애가 정말 기뻐하겠네요!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덧붙여 안심시켰다.

“이미 만났습니다.” 공작이 대답했다.
“그 아이는 당신이 그의 장을 도려내고 남은 걸 잘 이어붙였다고 극찬하더군요.”
그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그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물론, 아들—그리고 딸을—보러 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는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마도 도티가 약혼 사실을 부모에게 알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제 동생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사실 제가 미 대륙에 온 이유는 임무 때문입니다. 제 연대가 최근 뉴욕에 상륙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나는 말했다.
“어… 반가운 소식이네요.”
존은 분명 그의 형이, 그리고 그 연대가 미국에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뭔가를 물어보고 앞으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캐내야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꺼낼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 클린턴 장군이 공손히 기침을 했다.

“레이디 존—지금 남편분이 어디에 계신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해럴드 공작을 만나는 충격으로 내가 여기 왜 왔는지조차 잊고 있었는데, 장군의 말에 모든 게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모릅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부관에게도 말씀드렸지만, 몇 시간 전에 전령이 와서 쪽지를 전했고, 존 경은 그 전령과 함께 나갔습니다. 어디로 간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장군의 입가가 살짝 경련했다.

“실은,” 그가 정중한 말투를 유지한 채 말했다.
“존 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레이브스 대령이 전령을 보내 존 경의 재임관 사실을 알리고, 즉시 이곳으로 오라고 지시한 쪽지를 보냈지요.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내가 느끼는 당혹감 그대로 말이 새어 나왔다. 이 상황에선 그 반응이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나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참… 이상하네요. 그럼… 그는 누군가와 함께 떠나긴 했습니다.”

“누구였는지는 모르십니까?”

“떠나는 장면을 보지 못했어요.” 나는 그 질문을 깔끔하게 회피하며 말했다.

“어디로 간다고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어요.”

클린턴 장군은 진한 검은 눈썹을 들어올리며 조용히 파들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런 경우라면 곧 돌아오겠군.” 공작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급한 일은 아니니까.”

클린턴 장군은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없는 듯 보였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빠르게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파들로 공작에게 그를 만나 반가웠다는 인사와 혹시 존이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면 어디로 소식을 전하면 될지 여쭤보았다.

“킹스 암즈 여관에 묵고 있습니다.” 파들로가 말했다.
“제가 직접—”

“아뇨, 아뇨.”
나는 그의 호의를 끊고 급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감사합니다, 공작님.”
나는 장군에게, 그리고 공작에게 인사한 뒤, 휘날리는 치맛자락과 함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복잡한 감정들도 함께 뒤섞인 채로.

리처드슨 대위는 현관에서 사라져 있었지만, 그가 어디로 갔는지를 생각할 틈은 없었다. 문을 지키던 병사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건넨 뒤, 문을 나서자 나는 마치 수중 잠수함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제 어쩌지? 나는 생각했다.
훌라후프를 굴리며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 둘을 피해 몸을 틀었다.
그들은 가구와 짐을 마차로 옮기는 병사들의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튕기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들을 내버려두는 걸 보니, 아이들은 클린턴 장군의 부하 장교의 자식들일 것이다.

존은 종종 형에 대해 말했었고, 할의 독단적인 성향과 단호한 성격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난장판에 권위의식 강한 참견꾼이 끼어드는 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윌리엄이 그의 삼촌과 친하다면 할을 잘 설득해 윌리엄과 대화하게끔 해서— 아니, 안 돼.
할은 아직 제이미에 대해 몰라야 해. 그런 상황에서 윌리엄과 단 두 마디만 나눠도 바로 눈치챌 테니까— 그렇다고 윌리엄이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그러니까—

“레이디 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멈췄고, 그 잠깐의 틈 사이를 놓치지 않고 파들로 공작이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그는 내 팔을 붙잡고 나를 멈춰 세웠다.

“거짓말 솜씨가 썩 좋진 않군요.”
그가 흥미롭게 말했다.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건가요?”

“예고 없이 하게 되면 그렇죠.”
나는 쏘아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 안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내 얼굴 가까이 몸을 숙이며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존처럼 연한 하늘빛이었지만,
짙은 눈썹과 속눈썹이 대비되어 유난히 예리하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렇겠군요.”
그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안 하셨더라도, 아시는 걸 다 말씀하신 건 아니지요.”

“당신께 뭐든 말할 의무는 없어요.”
나는 존엄하게 대꾸하며 내 팔을 빼내려 했다.
“놓으세요.”

그는 마지못해 팔을 놓았다.

“실례했습니다, 레이디 존.”

“당연하죠.”
나는 날카롭게 말하고 그를 피해 가려 했지만, 그는 민첩하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소.”

“나도 알고 싶네요.”
나는 똑같이 받아치며 그를 지나쳐 나아가려 했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집이요.”
‘집’이라는 단어를 존의 집에 쓰는 건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겐 지금 다른 집이 없었다.
아니야, 있어, 작고 또렷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말했다. 제이미가 네 집이야.

“왜 웃고 계십니까?”
파들로가 놀란 듯 물었다.

“이 신발 벗고 싶다는 생각에요.”
나는 급히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발을 찌르듯 아파요.”

그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내자리를 드리죠, 레이디 존. 의자에 타시지요.”

“아니에요, 정말 괜찮—”
나는 말하다 말고, 그가 호주머니에서 나무 휘파람을 꺼내 날카롭게 불어댐에 놀랐다.

그러자 체구가 작고 튼튼한 두 남자가 각기 한쪽씩 어깨에 지게를 짊어지고 모서리에서 빠르게 걸어나왔다. 그들 사이엔 장식이 있는 가마가 들려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이런 건 필요 없어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게다가 존 말로는, 공작님은 통풍을 앓으신다면서요. 공작님 본인이 타셔야죠.”

그 말에 그는 불쾌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짧게 말하며 대답했다.
“괜찮소, 부인.”

그리고는 다시 내 팔을 붙잡더니 거의 끌다시피 나를 가마에 태워버렸다. 그 와중에 모자가 눈을 덮을 정도로 푹 눌려졌고, 그는 가마 문을 닫으며 말했다.
“이 부인은 내 보호 하에 있소. 킹스 암즈 여관으로 데려가시오.”

그리고 내가 “그 자의 목을 쳐라!”라고 말할 틈도 없이, 우리는 하이 스트리트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가마 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뛰쳐나올 생각을 했다. 몇 군데 찰과상을 입더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낫다고 여겼지만, 그 악질이 밖에서 잠금핀을 걸어버렸고, 안에서는 그걸 풀 수 없었다.

나는 가마꾼들에게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아무 반응도 없이 계속해서 도로 위를 달렸다. 마치 엑스에서 겐트까지 소식을 전하는 사신처럼, 돌길을 쿵쾅거리며 내달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분노로 가슴을 부풀린 채 가마 좌석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던졌다. 파들로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존이 말하던 이야기들과, 그의 자녀들이 그에 대해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면 그는 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왔던 사람임이 분명했다.

“좋아, 어디 두고 보자고.”
나는 낮게 으르렁이며 긴 진주 머리핀을 모자 챙에 꿰었다.

내 머리를 묶고 있던 스누드는 모자에 딸려 빠져나왔고, 나는 그것을 대충 안에 쑤셔 넣은 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털어내렸다.

가마는 브릭으로 포장된 포스 스트리트로 접어들었고, 바닥이 매끄러워지자 충격이 줄었다. 나는 좌석의 손잡이를 놔도 될 정도가 되었고, 창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창문만 열 수 있다면 밖에서 잠금핀을 빼내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그리고 가마 문이 열려서 내가 도로에 굴러떨어지더라도 그것이야말로 공작의 간섭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창문은 슬라이딩 패널 구조였지만 잡을 만한 손잡이가 없었다. 한쪽 가장자리에 파인 얕은 홈에 손가락을 끼워 밀어야만 열리는 구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홈에 끼우고 창을 밀려 했고, 가마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공작의 목소리가 크게 끊기며 울렸다.

“멈 . . . 춰. 숨을 . . . 쉴 수가 . . .”

그의 말은 점점 흐려졌고, 가마꾼들도 속도를 줄이며 멈춰섰다.

나는 갑자기 멈춘 가마 안에서  얼굴을 창문에 밀착시켰다.

그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고, 조끼 안쪽 복부에 주먹을 얹은 채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입술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당장 날 내리고 이 빌어먹을 문을 열어!”
나는 창을 통해 소리쳤다.

가마꾼 중 한 명이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보더니 곧바로 문을 열었고, 나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모자핀을 가슴 앞 단추 틈에 꽂아 넣었다. 아직 쓸 일이 남았을지도 모르니.

“이제 좀 앉으시죠.”
나는 파들로 곁에 다가가 말하며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는 고개를 저었지만,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내가 그를 앉힌 그 행위는 짜릿한 복수 같았지만, 동시에 그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엄습했다.

처음에는 심장마비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숨소리를 듣자마자 천식 발작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괴로운 휘청거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의 맥을 짚어보았다. 심장은 거세게 뛰고 있었지만 일정했고, 땀도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더위에서 나오는 정상적인 땀이었다.

나는 그의 주먹이 얹힌 배를 가리켰다.

“여기 통증 있으세요?”

그는 고개를 저었고, 거칠게 기침하더니 손을 풀었다.

“약 . . . 통 . . . 주머니 . . .”
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끼 안을 가리켰다.

나는 손가락을 집어넣어 작은 에나멜 상자를 꺼냈고, 그 안에는 코르크 마개로 막힌 작은 약병이 들어 있었다.

“뭐—됐어요.”
나는 코르크를 열고 냄새를 맡았다.
앗, 암모니아! 그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나도 모르게 헐떡거렸다.

“안 돼요.”
나는 단호히 말하며 마개를 닫고 병과 상자를 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건 도움이 안 돼요.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내쉬세요.”

그는 약간 눈이 튀어나왔지만, 내 말을 따랐다. 그의 숨결이 내 땀에 젖은 얼굴에 살짝 닿았다.

“좋아요. 이제 긴장하지 말고요. 숨을 억지로 들이마시려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오게 하세요. 넷까지 세며 내쉬고, 둘까지 세며 들이쉬는 거예요.”

“하나 . . . 둘 . . . 셋 . . . 넷. 하나 . . . 둘. 좋아요. 다시 하나 . . . 둘 . . . 셋 . . . 넷. 하나 . . . 둘.”

“잘하고 있어요. 절대 질식하지 않아요. 이렇게 계속하면 돼요.”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로커스트 스트리트 근처에 있었고, 피터맨 여관이 한 블럭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당신.”
나는 가마꾼 중 한 명을 향해 말했다.
“여관으로 가서 진한 커피 한 주전자 가져와요. 이분이 계산하실 거예요.”

나는 공작 쪽으로 손짓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 근처에는 헵디 박사의 진료소가 있었고, 그 사기꾼이 날카로운 검을 들고 튀어나오는 건 지금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천식이 있으시군요.”
나는 다시 공작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릎을 꿇은 채 맥박을 재고 있었다. 맥박은 눈에 띄게 느려졌고, 확실히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역설맥(paradoxical pulse)’이라 불리는 현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숨을 내쉴 때 심박수가 빨라지고, 들이쉴 때는 느려지는 증상이었고, 천식 환자에게 종종 보이는 반응이었다.

물론, 굳이 이런 증상이 없어도 천식이라는 건 이미 확실했다.

“본인이 천식이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입술을 오므려 숨을 내쉬었다.

“예.”
짧게 말하며 다시 들숨을 쉬었다.

“병원에는 다니시나요?”
그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로, 천식 치료에 그 약—살 볼라틸(sal volatile)을 쓰라고 의사가 말했나요?”
나는 내 주머니 안의 약병을 가리켰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절 . . . 했을 . . . 때 쓰라고 . . .”
그는 겨우 그렇게 말하며 숨을 골랐다.
“그거밖에 . . . 없었소.”

“그렇죠.”
나는 그의 턱 아래 손을 넣어 머리를 살짝 뒤로 젖히며 동공을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경련도 점차 풀리고 있었고, 그도 이를 느끼는 듯했다. 어깨가 내려가고 있었고, 입술의 푸른 기운도 사라지고 있었다.

“천식 발작 때는 그 약 쓰시면 안 됩니다. 기침과 눈물, 점액이 나와서 상태를 더 악화시켜요.”

“다들 뭘 멍하니 보고 있어요? 이보게, 의사부터 불러오라니까!”
군중 뒤편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고, 그걸 본 공작은 의아한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동네 의사는 부르지 마세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는 몸을 일으켜 군중을 향해 돌아섰다.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여러분.”
나는 가능한 한 부드럽고 매력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냥 급체였어요—조금 탈이 났을 뿐이에요. 지금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내 보기엔 여전히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 부인.”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했고,

“죽게 놔둬! 개 같은 랍스터 자식!”
군중 뒤편에서 누군가 고함을 쳤다.

그 말에 군중 전체가 마치 전기처럼 스멀스멀 긴장감에 휩싸였고, 내 배 속에서 무거운 돌덩이 같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공작을 그냥 ‘볼거리’로 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그가 ‘영국군’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의사 불러올게요, 레이디 존!”
끔찍하게도, 토리파로 이름난 코필드 씨가 그의 황금 머리 장식 지팡이를 휘두르며 군중을 뚫고 앞쪽으로 나왔다.

“비켜, 이 벌레 같은 놈들아!”
그는 그렇게 외치며
가마 안으로 몸을 숙여 공작을 바라봤다.

“실례합니다, 공작님. 곧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나는 그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군중은—신의 은총으로—완전히 하나로 뭉치진 않았다. 공작과 나에게 쏟아지는 야유와 모욕도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온건한 충성파들이나 혹은 단순히 ‘길거리에서 병든 사람을 공격하는 게 정당한 정치 철학인가?’ 하는 이성 있는 사람들이 크게 항의하며 맞서고 있었고, 이들 중 몇몇은 맞대응으로 모욕적인 말들을 뱉기 시작했다.

“안 돼요, 안 돼!”
나는 외쳤다. “의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세요. 공작님을 이대로 남겨두는 건 위험해요!”

“공작?”
코필드 씨는 눈을 깜빡이며 작은 케이스에서 금테 안경을 조심스럽게 꺼내 코에 얹고는 가마 안을 들여다봤다. 공작은 여전히 꾸준히 호흡법을 이어가면서도, 자그마한 고개 끄덕임으로 품위를 잃지 않았다.

“파들로 공작이십니다.”
나는 급히 말하며 여전히 코필드 씨의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공작님, 이쪽은 피니어스 그레이엄 코필드 씨입니다.”
나는 두 사람 사이를 대충 손짓으로 소개했고, 그때 멀리서 뛰어오는 의자꾼 하나를 발견하곤 귀에 들리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고마워요,”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주전자를 낚아채며 덧붙였다.
“군중이 더 흉포해지기 전에 빨리 공작님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마 지붕에서 딱! 하고 날아온 조약돌이 튕겼고, 코필드 씨는 고개를 홱 숙였다.

“이런 젠장!”
의자꾼은 자기 생계 수단에 대한 공격에 분노하며 군중을 향해 주먹을 쥐고 돌진하려 했고, 나는 한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공작님을—그리고 당신 가마를—어서 데리고 나가요!”
나는 가능한 한 단호하게 말했다.
“어디로 . . . 어디로 가면 좋을까—”
킹스암즈 여관은 충성파들이 모이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라 더 큰 화를 부를 것이 뻔했고, 무엇보다 나 역시 공작의 감시 아래에 들어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체스넛가 17번지로 가요!”
나는 급히 외쳤고, 한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지금 당장!”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가마로 달려갔다. 소매에 꿰매진 그의 번호는 ‘39번’이었다.

가마의 측면에는 이미 자갈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다른 의자꾼—40번—은 마치 벌떼를 쫓듯 자갈을 내리치며,
“꺼져, 이 자식들아!” 라고 반복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코필드 씨는 보다 점잖게,
“물러서시오!”
“당장 그만두시오!”
같은 외침과 함께 지팡이로 장난치듯 앞으로 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여기요.”
나는 숨을 몰아쉬며 가마 안으로 몸을 숙였다. 할 공작은 아직 살아 있었고, 숨도 쉬고 있었다.
그는 눈썹을 한쪽 치켜올리며 군중을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커피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마시세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계속 . . . 숨 쉬세요.”
가마 문을 닫고 잠금핀을 단단히 고정시킨 뒤에야 순간적인 만족감과 함께 몸을 곧추세웠다.

그 순간, 퍼거스의 장남인 제르망이 내 옆에 나타나 있었다.

“또 말썽에 휘말린 거예요, 그랑메르(할머니)?”
그는 땀 범벅인 내 얼굴이나 머리에 날아드는 자갈, 이제는 심지어 축축한 가축 분뇨 덩어리조차 아랑곳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르맹은 뒤로 돌아 군중을 향해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분은 내 할머니야!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면—”
군중 몇몇이 웃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에 손을 올렸다. 모자가 없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고, 머리는 구름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으며, 땀에 젖은 가닥들이 뺨과 목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랬다간 내가 아주 혼내줄 거야!”
제르맹이 소리쳤다.
“특히 너, 셰키 로우! 그리고 너도, 조 그룸!”

두 소년이 손에 쥔 분뇨를 들고 망설였고, 그들이 제르맹을 잘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내 그랑메르가 너희 아빠한테 이 일 다 말할 거야!”
그 말에 두 소년은 깜짝 놀란 듯 뒤로 물러났고, 손에 들고 있던 오물을 떨어뜨린 뒤 모르는 척 뒤를 돌아섰다.

“자, 가요, 그랑메르.”
제르맹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의자꾼들은 재빠르게 막대를 들고 가마를 다시 들어올렸고, 나는 이 높은 굽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구두를 벗고는 손에 들었다.

그때 뚱뚱한 헵디 의사가 씩씩거리며 나타났고, 그를 부추긴 듯한 여성은 영웅이라도 된 양 당당하게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감사해요, 코필드 씨.”
나는 급히 말하며 신발을 움켜쥐고 가마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드레스 자락이 지저분한 돌길을 쓸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제르맹은 뒤로 빠지며 위협적인 몸짓으로 군중의 추격을 막았다. 소리는 여전히 따라왔지만, 적대감은 점차 웃음소리로 바뀌었고 돌멩이나 분뇨는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자 의자꾼들은 속도를 조금 늦췄고, 나는 벽돌길 위를 맨발로 달리며 가마 옆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공작은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고, 얼굴빛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커피 주전자는 그의 옆에 놓여 있었고, 보아하니 이미 비워낸 듯했다.

“지금 . . . 어디로 가는 거요, 부인?”
그가 창을 열고 외쳤다. 의자꾼들의 구둣발 소리와 유리창을 통해 듣는 그의 목소리는 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걱정 마세요, 공작님,”
나는 달리며 크게 외쳤다.


“이제 당신은 제 보호 아래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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