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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제이미, 그리고 윌리엄의 출생의 비밀 (Chapter 101) 본문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제이미, 그리고 윌리엄의 출생의 비밀 (Chapter 101)
페이쓰 2025. 4. 12. 13:06* 도파민 뿜뿜의 챕터
** 아니 존 그레이 미친 거 아니냐고,,,누가 고백을 저따위로 하는데!!
101. REDIVIVUS 부활한 자
부활한 자 (Redivivus)
나는 차를 마시러 갈 준비를 하며 머리를 올려 핀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그때 침실 문에서 살짝 긁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존이 부츠를 신으면서 말했다.
문이 조심스레 열렸고, 그 틈으로 가끔 윌리엄의 오더리(병사 보조)를 맡는 이상하게 생긴 콘월 출신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존에게 뭔가 말을 건넸고, 쪽지 하나를 건넸다.
존은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돌려보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존은 엄지손가락으로 봉인을 떼며 중얼거렸다.
“누구? 아, 콜렌소? 아니, 단 한 마디도.”
그는 건성으로 대답한 뒤, 쪽지를 읽고는 입술을 오므려 소리 없는 휘파람을 불었다.
“무슨 내용인데요?”
내가 묻자—
“그레이브스 대령에게서 온 편지야.”
존은 조심스레 쪽지를 다시 접었다.
“이게 혹시—”
또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존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은 안 돼. 나중에 오게.”
“그러고는 싶지만,”
문 너머에서 정중한 스코틀랜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요, 아시겠소?” “But there’s some urgency, ken?”
문이 열리고, 제이미가 들어섰다.
그는 문을 닫고, 나를 보자마자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나는 그의 품 안에 있었다.
그의 압도적인 온기와 존재감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내 피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머리에서 피가 쑥 빠져나간 듯했고, 눈앞에는 반짝이는 불빛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 피는 다리 쪽으로는 가지 않은 것 같았다.
내 두 다리는 갑자기 무너져내렸고,
제이미는 그런 나를 부축해 안고, 키스했다.
입술엔 맥주 맛이 살짝 배어 있었고, 수염 자국이 내 얼굴을 스쳤다.
그의 손가락은 내 머리칼 속으로 파고들었고,
가슴은 그의 가슴에 닿으며 따뜻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 이제야 돌아왔군요,”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그가 잠시 입술을 떼며 물었다.
“내 피요.”
나는 저릿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방금처럼 다시 해봐요.”
“그럼, 그럴 거요.”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근처에 영국군이 좀 있단 말이지. 그러니—”
그 순간, 아래층에서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실이 고무줄처럼 되튕기며 정신을 되돌려 놓았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심장은 북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대체… 왜 젠장 맞게도 안 죽었어요?” “Why the bloody hell aren’t you dead?”
그는 어깨를 한 번 툭 으쓱이며 웃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얼굴은 말랐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렸으며, 온몸엔 흙먼지와 땀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구토 냄새도 느껴졌다—그는 막 배에서 내린 참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프레이저 씨,”
존이 창가로 다가가 거리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은 채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몸을 돌렸고, 나는 그의 얼굴이 창백하면서도 촛불처럼 안에서부터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요? 생각보다 빠르군,”
제이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함께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당신을 보게 되어 반갑소, 존—비록 잠시일지라도.”
존의 미소는 눈에서부터 빛났다.
그는 잠깐 손을 뻗어 제이미의 팔을 가볍게 스쳤다.
마치 그가 진짜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빨리. 뒤쪽 계단으로 내려가죠. 아니면 다락으로 통하는 해치가 있으니… 지붕 위로 나갈 수도 있고—”
제이미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돌아올게,”
그는 말했다.
“가능할 때, 꼭.”
그는 손을 들어 내게 닿으려 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갑작스럽게 몸을 돌려 존을 따라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아래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은 몸뚱이에 강철 같은 심지를 가진 **픽 부인(Mrs. Figg)**은 그들에게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마치 롯의 아내처럼 얼어붙은 채 있었지만, 픽 부인의 풍성한 욕설 소리를 듣자 즉각 몸이 움직였다.
지난 5분간 일어난 일들로 내 정신은 얼이 빠졌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머릿속은 기이할 정도로 맑았다.
이성도, 추측도, 안도감도, 기쁨도, 심지어는 걱정조차 들어올 공간이 없었고,
지금 내가 가진 정신 능력이라고는 긴급 상황 대응력 하나뿐이었다.
나는 모자를 움켜쥐고 머리에 억지로 눌러썼다.
머리카락을 그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문을 향해 달렸다.
픽 부인과 내가 함께라면, 분명 군인들을 충분히 지연시킬 수 있을 터였다—
이 계획은 아마 잘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윌리와 정면으로 부딪히지만 않았더라면.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던 그와 정통으로 부딪혔고, 나는 그 충격에 휘청였다.
“클레어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에 계세요? 저 아래에—”
그는 내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팔로 나를 붙들었지만,
곧 복도의 소리에 이목을 빼앗겼다.
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리고는 나를 놓았다.
눈은 휘둥그레,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처럼.
제이미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우리와의 거리는 채 3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 옆엔 존이 있었다—새하얀 얼굴로, 눈이 똑같이 휘둥그레.
그리고 그 둘을 마주보는 윌리의 눈 역시, 똑같이 푸르고, 똑같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소년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채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두 끝에서 마주한 깊은 푸른색 ‘프레이저의 고양이 눈’이, 매켄지의 뼈대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윌리는 매일 아침 면도를 하는 나이다—그는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윌리의 입이 파르르 떨렸다.
충격에 휩싸인 채, 말문이 막혔다.
그는 나를 보고, 다시 제이미를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에서 진실을 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그는 쉰 목소리로, 거의 숨을 내뱉듯 제이미를 향해 물었다.
제이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레 몸을 바로 세웠다.
아래층의 소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임스 프레이저요,”
그는 말했다.
그의 눈은 윌리엄을 바라보며, 마치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순간을 영혼까지 새기려는 듯 이글거렸다.
“넌 날 예전에 알렉스 매켄지로 알았지. 헬워터에서.”
윌리엄은 눈을 두 번, 세 번 깜빡였다.
그리고 시선이 잠시 존에게 옮겨갔다.
“그럼… 그럼… 나는… 나는 대체 누군데?”
그는 절규하듯 외쳤고, 말끝은 거의 삑사리 나듯 떨렸다.
존이 입을 열려 했지만,
대답한 건 제이미였다.
"너는 악취나는 가톨릭이지" “You are a stinking Papist“ (역: 어린 윌리와의 작별 때 제이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그는 정확하게 단어를 골라 말했다.
“그리고 네 세례명은 **제임스(James)**야.”
그의 얼굴에 잠깐 후회의 그림자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 이름밖에… 네게 줄 자격이 있는 이름이 없었거든,”
그는 조용히 말했다.
눈은 오직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윌리엄의 왼손이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쳤다.
검을 찾는 습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가슴팍을 퍽 치며 셔츠 단추를 손으로 풀려 했지만
손이 너무 떨려 제대로 풀 수 없었다.
결국 옷을 마구 찢어 헤치더니,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언가를 머리 위로 벗겨내더니—
그대로 제이미를 향해 던졌다.
제이미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고,
나무 묵주가 그의 손바닥에 정확히 부딪혔다.
구슬이 엉켜 그의 손가락에 휘감겼다.
“지옥에나 떨어지시오, 선생,”
윌리엄이 외쳤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하느님이 당신을 저주하길!”
그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돌아서려다—갑자기 몸을 돌려 존을 향해 포효했다.
“그리고 당신도요! 당신도 알고 있었죠? 하느님이 당신도 저주하시길!”
“윌리엄—”
존이 절망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말을 잇기도 전에
복도 아래서 목소리들이 들려왔고,
계단을 올라오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렸다.
“새서내크(Sassenach)! 걔를 붙잡아!”
제이미의 목소리가 소란을 뚫고 명확히 들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완전히 반사적으로 윌리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아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뭐야—”
그가 말하려 했지만,
계단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붉은 군복을 입은 병사가 환호성을 지르며 외쳤다.
“여기 있다!”
순식간에 복도는 우글우글한 병사들로 뒤덮였다.
그들은 우리를 밀쳐내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는 죽은 듯 윌리를 놓지 않고 매달렸고,
그 역시 뒤늦게 몸을 뺄 새도 없이 밀려들었다.
모든 소음이 갑자기 멎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압박이 살짝 느슨해졌다.
누군가 나를 밀치면서 내 모자가 눈 위로 밀려 내려왔고,
나는 한 손으로 윌리의 팔을 놓아 모자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쯤 되니 ‘점잖은 부인’ 따위의 체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팔뚝으로 쓸어올리며
나는 다시 윌리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완전히 굳어 있었다.
붉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은 어정쩡하게 발을 옮기며 긴장하고 있었지만,
어떤 **‘무언가’**가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나는 몸을 틀어 제이미를 봤다.
그는 존 그레이의 목에 한 팔을 감고 있었고,
그 반대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는 존의 머리에 바짝 닿아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그는 침착하지만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사람 머리통에 총알을 박겠소.
나한테 잃을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하오?”
사실, 그 뒤에 나와 윌리가 서 있었으니
그도 잃을 게 있었지만, 병사들은 그걸 몰랐다.
윌리의 표정을 보니, 그는 차라리 혀를 잘라버릴지언정 진실을 말하진 않을 사람 같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라면,
제이미가 존을 죽이고 총알 세례로 죽어도 별로 상관없다는 눈빛이었다.
내가 잡은 그의 팔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가능하다면, 그가 두 사람 다 죽였을 것이다.
내 주변의 병사들 사이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위협의 소리가 흘렀다.
몸을 움찔이며 자세를 잡는 움직임이 감지됐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제이미는 내게 한 번 눈길을 줬다.
얼굴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뒤쪽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며,
존을 끌고 사라졌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 옆에 서 있던 하사관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계단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뒤로 돌아! 어서 가!”
“멈춰!”
윌리가 갑자기 살아난 듯 외쳤다.
내 손아귀에서 팔을 휙 뿌리친 그는 하사관을 향해 소리쳤다.
“집 뒤쪽에 병사 배치했나?”
하사관은 그제야 윌리의 군복을 보고는 자세를 고쳐 잡고, 경례를 했다.
“아, 아닙니다, 장교님. 그럴 생각을—”
“멍청하긴.”
윌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예, 장교님. 하지만 지금 당장 출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하사관은 앞꿈치로 들썩이며 조바심을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은 몸이었다.
윌리엄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의 얼굴 위를 생각이 지나가는 것이, 마치 활자판에 인쇄된 것처럼 뚜렷이 보였다.
그는 제이미가 존 그레이에게 실제로 총을 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만약 병사들을 보낸다면, 그들이 따라잡을 확률도 있었고—
그 말은, 그중 한 명 혹은 둘 다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죽지 않고 제이미가 잡힌다면—그가 무슨 말을 할지, 누구에게 말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위험이었다.
묘하게 익숙한 기시감 속에서, 나는 그가 계산을 마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하사관에게 돌아섰다.
“지휘관에게 복귀하게. 콜로넬 그레이가… 반군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다고 보고하고,
모든 검문소에 통지하라고 해.
소식이 들어오는 즉시 나에게 보고하도록.”
계단참에 몰려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의 웅성거림이 일었지만
반항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고,
윌리엄의 매서운 눈빛 앞에서 그마저도 사그라들었다.
하사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경례를 올렸다.
“알겠습니다, 장교님.”
그는 딱 부러지게 돌아서며 손짓 하나로 병사들을 계단 아래로 내려보냈다.
무거운 군화 소리가 쿵쾅거리며 멀어졌다.
윌리엄은 그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깨달은 듯 몸을 굽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내 모자를 집어 들었다.
모자를 손에서 비비작거리며, 그는 나를 길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사려 깊은 추측이 가득했다.
앞으로의 시간이 꽤나 흥미로워질 것 같았다.
나는 상관없었다.
제이미가 존에게 절대 총을 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착각하고 있진 않았다.
나는 그걸 냄새로도 느낄 수 있었다—
땀과 화약 냄새가 계단참 공기 속에 짙게 깔려 있었고,
아직도 발바닥은 아래층 문이 쾅 닫혔던 진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레이는 여전히 셔츠 차림이었다.
빗물은 얇은 천을 뚫고 살갗까지 흠뻑 적셨다.
제이미는 낡은 헛간 벽에 다가가, 널빤지 틈 사이로 눈을 가져갔다.
그는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존은 말을 삼킨 채 서 있었다.
그의 몸이 떨렸다.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누굴까?
군인은 아닌 듯했다—
황동 장식이나 무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들이 멀어지고, 제이미는 몸을 돌렸다.
이제야 그레이가 흠뻑 젖은 걸 눈치챈 그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조심스레 그에게 둘러주었다.
그 망토도 축축했지만 두꺼운 모직이었고,
제이미의 체온이 아직 맴돌고 있었다.
그레이는 눈을 잠시 감았다.
포근한 품에 안긴 듯한 감각이었다.
“지금껏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레이가 눈을 뜨며 물었다.
“언제를 말하오? 방금이오, 아니면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후부터?”
“방금요.”
“아.”
제이미는 빈 술통 위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대었다—아주 조심스럽게.
그레이는 그의 짧은 탄식이 거의 “아흐(ach)”에 가까운 걸 듣고,
요즘 대부분을 스코틀랜드인과 보낸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가볍게 오므려진 걸 보고는
제이미가 지금 무언가를 생각 중이라는 걸 눈치챘다.
사선으로 뻗은 파란 눈이 그의 쪽을 가로질렀다.
“정말로 알고 싶은가? 안 듣는 게 나을 수도 있소.”
“나는 당신의 판단과 신중함을 꽤 신뢰합니다, 프레이저 씨,”
그레이가 공손히 말했다.
“하지만 제 자신의 판단을 조금 더 신뢰하지요. 이해해 주시겠죠.”
제이미는 그 말이 웃긴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셔츠 안쪽에서 기름종이에 싸인 작은 꾸러미를 꺼냈다.
“내 수양아들한테 이걸 받는 장면을 누군가 봤지,”
그가 말했다.
“그 자가 날 뒤쫓아 여관까지 왔고, 내가 한숨 돌리는 사이 군인들을 데려왔을 거요—아마.
그들이 거리를 따라 오는 걸 보고,
혹시나 나를 노리는 게 아닐까 싶어… 그냥 나왔소.”
“아무도 쫓지 않는데 죄 지은 자가 도망친다는 고사, 아시죠?
혹시 당신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흥미를 느껴 군인들이 쫓은 건 아닐까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냥당하는 놈의 본능이라오.”
“그런 본능을 가진 당신이 이렇게 궁지에 몰린 게 오히려 놀랍군요.”
“그래도 여우도 늙긴 하지 않소?”
제이미는 툭 내뱉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제 집으로 온 겁니까?”
그레이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도시 외곽으로 도망쳤어야지요.”
제이미는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내 아내.”
그는 아주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레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 아릿한 울림을 느꼈다.
그건 단순한 실수나 경솔함이 아니었다.
심지어 도망 중임에도,
제이미 프레이저는 그녀를 위해 존 그레이의 집으로 향한 것이다.
클레어를 위해.
“젠장,” 그레이는 속으로 외쳤다.
클레어!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럴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이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꺼내 들고,
손짓으로 그레이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말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났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제이미는 일어나 허리띠에서 권총을 꺼내들고는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은 골목을 빠져나가 여관의 뒷마당을 가로질렀다.
열린 양조통 옆을 간신히 지나치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맥즙 표면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홉(역: 맥주의 향과 쓴맛을 내는 식물)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가운데,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고, 그제야 걸음을 늦췄다.
제이미는 그 짧은 여정 내내 존의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존은 점점 손이 저려오는 걸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몇 무리의 병사들 곁을 지나쳤지만,
존은 제이미와 발을 맞추며 앞만 바라봤다.
그는 마음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면 제이미는 죽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적어도 한 명의 병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제이미는 권총을 코트 속에 숨긴 채 손에 쥐고 있었고,
도시 외곽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것을 허리띠에 꽂았다.
그가 말을 맡겨둔 곳은 개인 주택이었다.
그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하고 낮게 말하고는
존을 현관에 남겨둔 채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강한 충동이
존의 등을 밀쳐 도망치게 만들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미가 다시 나타나 그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을 때,
존은 속으로 생각했다.
"넌 내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 확신하지 못했군? 괜찮아, 나도 확신하지 못했으니까."
“가세,”
제이미가 말하며 고개를 까딱이고는 마굿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재빨리 두 번째 말에 안장을 얹고 고삐를 건넸다.
“형식적인 절차요,”
제이미가 공손하게 말하며 권총을 뽑아 그의 가슴께로 겨눴다.
“혹시 나중에 누가 물으면 말이오.
자네는 내게 끌려간 거고, 내가 도시를 벗어나기 전까지
배신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쏘겠다는 뜻이오. 이해했소?”
“이해했소,”
존은 짧게 대답하고 말안장에 올라탔다.
그는 제이미보다 조금 앞서 말 위에 올랐고,
자신의 등 한가운데를 겨누고 있을 그 작은 원형의 무게를 의식했다.
형식적이라는 말은 말뿐이었지만,
그가 정말로 쏠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나중에 알게 되면, 가슴에 총을 쏠까? 아니면 그냥 내 목을 꺾어버릴까?
존은 생각했다.
아마 맨손일 거야. 그런 건 본능적인 문제니까.
사실을 숨기겠다는 생각은 진지하게 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클레어 프레이저를 제이미만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비밀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비밀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라면 더더욱.
물론, 다시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존은 제이미 프레이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한 가지는—
그와 그의 아내 사이를 오랫동안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는 지나갔고, 햇살이 고인 물웅덩이 위로 비쳤다. 그들은 도로 위를 첨벙이며 지나갔다. 도시 전체에 움직임이 감돌았고, 공기 중엔 분주한 기운이 가득했다. 군대는 저먼타운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필라델피아 시내에도 병사들이 항상 있었고, 그들의 임박한 출병 소식—행군 재개에 대한 기대감은 마치 전염병처럼 도시 전체를 감쌌다. 열에 들뜬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는 길목에서 순찰대가 그들을 멈춰 세웠지만, 그레이가 자신의 이름과 계급을 밝히자 금세 통과시켰다. 그는 제이미를 ‘알렉산더 맥켄지 씨’라 소개했고, 순간 그의 동행자로부터 미묘한 유머의 기운이 느껴졌다. 알렉산더 맥켄지는 제이미가 헬워터에서 그레이의 포로로 있었을 당시 사용했던 가명이었다.
오, 맙소사, 그레이는 갑자기 생각했다. 그들은 순찰대의 시야에서 벗어나 앞서가고 있었고, 이제야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
윌리엄. 그 충격적인 대면과 급박한 탈출 속에서 그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윌리엄은 어떻게 할까?
생각들이 벌 떼처럼 윙윙거리며 그의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수많은 벌이 서로 뒤엉키며 꿈틀대는 듯한 감각—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려 해도, 바로 다음 것이 밀려들어와 금세 사라졌다.
데니스 랜들-아이작스. 리처드슨.
그레이가 사라지면, 리처드슨은 클레어를 곧장 체포하려 들 것이다.
윌리엄이 알고 있다면 막으려 하겠지만—그는 리처드슨이 어떤 자인지 모른다.
사실 그레이 자신도 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헨리와 그의 흑인 연인—이제 그레이는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시선에서 확인했다.
도티와 그녀의 퀘이커 약혼자… 그 충격이 하틀리(윌리엄의 삼촌, 헨리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는 곧장 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를 진짜로 죽일지도 모른다.
퍼시. 오, 예수, 퍼시…
이제 제이미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들은 한적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곳곳엔 작은 무리들이 있었다. 대부분 군에 물자를 나르는 농부들이었다.
사람들은 제이미를 흘끗 보았고, 그레이에게는 더더욱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멈추거나 묻지 않았고,
한 시간쯤 후, 제이미는 주도로에서 벗어나 비에 젖고 김이 오르는 작은 숲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그곳엔 개울이 있었다.
제이미는 말에서 내려 말에게 물을 마시게 했고, 그레이도 따라 내렸다.
그는 왠지 현실감이 없었다.
안장과 고삐의 가죽이 피부에 닿는 촉감조차 낯설게 느껴졌고,
빗방울을 머금은 공기는 마치 그의 몸을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뼈와 살 사이를 통과하는 것만 같았다.
제이미는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물을 마신 뒤, 얼굴과 머리에 물을 끼얹고는 개처럼 몸을 털어 일어났다.
“고맙소, 존,” 그가 말했다. “아까는 말할 시간이 없었지만, 정말 감사했소.”
“고맙다고? 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는데. 자네가 총을 겨누며 날 납치했잖소.”
제이미는 웃었다. 지난 한 시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의 얼굴에서 굳은 선들이 사라졌다.
“그 말이 아니오. 클레어를 돌봐줘서 말이오.”
“클레어,” 그레이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아… 그거 말인가.”
“그거지,” 제이미가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약간 굽혀 그레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소, 존? 얼굴이 좀 창백하군.”
“창백하군,” 제이미가 말했다.
그레이는 중얼거렸다. “창백하다고…”
심장이 무질서하게 뛰고 있었다. 어쩌면 이 기회에 멈춰주면 좋을 텐데.
그는 잠시 멈춰 기다려봤지만, 심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힘차게 뛰고 있었다.
도움이 안 되네, 그럼.
제이미는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겠지.
그레이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눈을 감은 채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다.
“나는 당신의 아내와 육체 관계를 맺었습니다.” “I have had carnal knowledge of your wife,” he blurted.
그는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즉시 죽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세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갔다.
새들은 여전히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있었고,
풀을 뜯던 말들의 입에서 나는 질질 끌고 쩝쩝거리는 소리만이 물 흐르는 소리 위로 들려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쪽 눈을 떠보았다.
제이미 프레이저는 고개를 살짝 갸웃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제이미는 호기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왜?”
“Oh?” said Jamie curiously.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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